computer2018. 1. 21.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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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의 기원



5천년 쯤 전, 구리를 제련해 청동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인류가 알아내면서, 갑작스럽게 생산성이 증가해 당장 먹고 살 수 있는 양을 초과하는 자원을 생산해 내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진 식량을 확보하는 데 급급했는데, 모든 사람이 사냥을 하거나 농사를 짓지 않아도 더 많은 사람이 먹고 살 식량을 생산할 수 있게 되니, 농기구나 사냥기구가 아닌 장식품도 만들 여유도 생기고 문화도 융성하게 되었습니다. 남아도는 여러 물건들을 필요에 따라 서로 교환하는데 물고기니 쌀이니를 직접 들고다니며 물물 교환을 하니 너무 번거롭고 힘들어서, “야 우리 그냥 이렇게 생긴 조개 껍데기 하나를 물고기 한 마리라 치고, 물고기는 창고에 보관해 두고 조개 껍데기 하나 당 물고기 하나를 바꿔서 쓸 수 있게 하자”는 식으로 생겨난 게 화폐였습니다. 화폐가 작동을 하려면, 조개껍데기를 가지고 가면 물고기랑 바꿔줄 것이고 아무나 비슷하게 생긴 조개껍데기를 만들어서 사기를 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신뢰도”)이 있어야 하며, 누구나 조개껍데기가 물고기 한 마리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인지도”).

즉 화폐가 제 역할을 하려면 화폐 자체에 대해

1) 신뢰도: 교환가치가 있으며 위조가 불가능하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

2) 인지도: 그 존재에 대해 사람들이 널리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세금을 걷을 수 있고 그렇게 걷은 세금을 지급/집행할 수 있습니다. 미국 달러 지폐는 미국 정부가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 지폐에 적힌 만큼의 빚을 갚겠다는 약속/영수증이고, 그 약속을 바탕으로 (역시 미국스럽게 의외로 정부기관이 아니고 사기업에 가까운)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달러를 발권합니다. 지폐에 적힌 달러 만큼의 가치를 결국은 미국 정부가 파산하면서 모른 채 하지 않고, 지급을 보증해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신뢰도"를 확보하고, 마찬가지로 한국 원화는 한국 정부가 지급을 보증함으로써 "신뢰도"를 확보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화폐의 존재와 가치에 대해서는 정규교육과정을 통해 미취학 아동이 수를 셀 수 있을 때부터 널리 교육을 시킴으로써 "인지도"를 확보합니다.

요컨대 달러, 원 같은 법정화폐(fiat)는 정부가 그 가치를 보존/보증해 줄 것이라는 믿음과 교육을 통해 누구나 그 가치를 알고 있다는 인지도를 바탕으로 화폐의 가치를 갖고 그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그 외 교환가치를 갖는 것들로 대표적인 “금” 역시 수백 년 동안 연금술사들이 노력했지만 결국 합성을 하는데 실패한 것처럼 위조가 불가능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는 특성으로 "신뢰도"를 확보하며, 언어, 문화, 우화, 역사 등 여러 차원의 교육을 통해 그 가치가 널리 알려져 있어 "인지도"를 확보해 화폐의 대용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국가와 정부는 여러 세기에 걸친 역사를 통해 사라지고 생겨왔지만 금은 영원해왔던 만큼 오히려 금은 법정화폐를 넘어서는 안정성과 인지도를 가지고 있어서, 신용을 바탕으로 작동하는 세계 경제가 위기에 처하면 상대적으로 금의 가치가 부각되면서 금값이 오르기도 하지요.

다만 금은 들고 다니기가 번거롭고 위조된 것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귀찮은 절차를 거쳐야 하며, 필요에 따라 작은 단위로 쪼개기가 너무 힘들어서 교환 수단이라기보다는 가치를 저장하는 수단으로 쓰입니다. 금을 단순히 팔라듐, 텅스텐, 티타늄처럼 어떤 특성을 가진 금속의 일종으로만 사람들이 인식하기 시작하면 지금보다 가치가 훨씬 떨어지게 됩니다. “인지도” 프리미엄이 빠지기 때문이죠.



교환가치를 갖는 또다른 예는 각 회사의 “포인트”가 있습니다. 항공사 "마일리지"도 "포인트"의 일종이죠. 법정화폐는 정부가 지급을 보증하는 반면, 포인트는 회사가 지급을 보증한다는 것이 다른 점이죠. 말하자면 그 회사가 망하지 않고 등가의 물건으로 교환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신뢰도”를 바탕으로 가치를 지탱하는 것입니다. 포인트는 회사가 파산을 하면 교환가치가 없어진다는 점에서 법정화폐보다는 위험이 높고 그래서 “신뢰” 수준이 낮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치가 낮습니다. 또 포인트는 그 회사에서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범용성이 떨어져서 “인지도”가 낮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10만원 상품권이 시장에서는 10만원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법정화폐는 정부가 지급을 보증하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정부가 파산을 하면 법정화폐의 가치도 사라집니다. 그렇게 가치가 사라지는 모습을 지금은 베네주엘라나 짐바브웨에서 보고 있고, 10년 전 그리스도 그런 위험을 겪었고, 의외로 이런 일은 역사적으로 아주 흔했죠.

비트코인을 “가상화폐”라고 흔히 부르는데, 국내에서만 사용되는 “가상”이라는 표현은 실체가 없다는 편견을 줘서 혼란을 부추깁니다. 해외에서는 비트코인을 가상화폐에 상응하는 표현인 "virtual currency" 라고는 거의 부르지 않으며 보통은 cryptocurrency(“암호화폐”)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비트코인은 왜 "암호"화폐이고, "화폐"로서의 지위에 도전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비트코인이 "신뢰도"의 문제와 "인지도"의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입니다.

1. “신뢰” 문제의 해결



1982년에 “비잔틴 장군 문제”라는 논문에서 난제가 제시되었습니다. 비잔틴 제국의 여러 장군들이 적군의 도시를 공격하려는데 장군들은 지리적으로 서로 떨어져 있고, 장군들끼리 다른 장군에게 메시지를 보낼 때 전령이 중간에 잡혀버릴 수도 있고, 장군 중에 배신자나 간첩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군들이 동일한 공격계획을 세우고 적국에 쳐들어 가려면 어떤 규칙을 따라 교신을 하고, 배신자 대비 얼마나 많은 비율의 충직한 장군이 필요한가를 증명하라는 것이 비잔틴 장군 문제입니다.

2008년에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가명을 쓰는 사람이 이 문제를 풀었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제일 먼저 찾아내고, 다른 사람(코인)이 그 자리를 위협할 수 없게 "넘사벽"이 쌓여버린 데에서부터 비트코인은 가치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해커들이 암호를 풀 때는 암호 소유자의 생일, 전화번호, 자동차 번호나 흔히 사람들이 많이 쓰는 암호를 때려넣어서 그렇게 많지 않은 시도 내에 암호를 찾아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를 들어 K9UiGvJWBucgiWRRqc%>Ltr8YQKaKgdV 같이 잘 만든 암호는, 암호를 깨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것이 32글자라는 점은 알아도, abcdefghijklmnopqrstuvwxyz012345 를 넣어보고 그게 안 되면 마지막 5를 6으로 바꿔보고, .... 하는 식으로 하나하나 무식하게 암호를 입력해서 답을 찾아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식으로 해커들이 암호를 찾아내는 걸 "무지막지 공격(=brute force attack)"이라고 합니다.

이 무지막지 공격을 통해서만 답을 찾아낼 수 있는 암호를 내어 놓고, 저렇게 무식한 방법으로 수 억, 수 조 번의 연산을 해서 정말 힘들게 답을 찾아낸 사람에게만 “일정 기간 동안 발생한 거래를 기장할 권한”과 그에 따른 "보상"(=비트코인)을 주자는 것이 요지입니다.

즉 답을 찾아낸 사람에게 이전 답을 찾은 때부터 이번 답을 찾은 기간 사이에 불특정다수의 사람들이 사용한(주고받은) 비트코인의 내역을 “블록(block)”에 감싸서 이전까지의 블록에 “사슬(chain)”처럼 연결할 수 있는 권한을 줍니다. 그래서 “비트코인”이 “블록으로 된 체인 = 블록체인(blockchain)” 기술에 근거한 화폐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까지 503,970개의 암호를 저런 무식한 무지막지 공격 방식으로 흔히 “채굴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찾아냈고, 암호의 다음 답을 찾는 사람은 그 503,970번째 블록 다음에, 그 사이에 발생한 모든 거래를 블록으로 감싸서 503,971번째 블록을 연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거래(transaction)"를 “컨펌(confirm+ation)”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엄청난 전기를 소모하며 답을 찾아낸 채굴자에게는 보상으로 비트코인을 전송하면서 사람들이 냈던 소정의 비트코인 수수료에 사전에 정해진 규칙에 따라 하나의 블럭마다 일정량으로 지급하게 되어 있는 비트코인을 줍니다.

동시에 “기존의 체인에 503,971번째 블록이 연결되었어요”라는 내용이 인터넷(비트코인 네트워크)을 통해 전세계에 방송이 되고, 세계에 퍼져 있는 수천 개의 “노드(node)”가 그 방송을 듣고 503,971번째 블록의 내용을 똑같이 받아적습니다. 즉 거래의 내역을 기록하는 “장부(ledger)”가 은행이나 정부같은 “중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만 있으면 누구나 유지하고 운영할 수 있는 “노드”에 나뉘어 저장된다고 해서 “분산장부(distributed ledger)”나 “탈중앙화(de-centralized)”가 블록체인의 특성이라는 얘기를 흔히 하는 것입니다.

한편 블록체인에는 중요한 특징이 있는데 예를 들어 400,000번째 블록에 기록된 내용을 변경하면, 400,001번째 블록부터 503,971번째 블록까지 10만 개가 넘는 블록의 내용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내용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단지 딱 한 글자만 바꿔도 10만 개 블록에 적힌 수백만 개의 글자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400,000번째 블록에 있는 거래기록을 위조하려고 하면, 일단 저 풀기 어려운 암호를 엄청난 전기세를 들여서 찾아내야 합니다. 비트코인 암호의 난이도는 채굴자들의 수에 따라 더 높아지게 사전에 프로그래밍되어 있는데, 지금은 그 난이도가 너무 높아져 버려서, 하나의 답을 찾아내는데 정말 전기세가 많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같이 전기세가 저렴한 일부 지역에서는 보상으로 받는 비트코인의 가치가 전기세보다 아주 약간 더 높기 때문에 그 지역에서는 채굴을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다른 지역에서는 전기세가 보상보다 크기 때문에 채굴 시도를 할 유인이 보통은 없습니다. 아무튼 거래기록을 위조하려는 채굴자가, 400,000번째 블록부터 503,971번째 블록까지가 통째로 위조된 블록을 “방송”해야 하는데, 만약 그렇게 잘못된 내용을 방송하면, 전 세계에 있는 “노드”들이 그 방송을 듣고 “어라 내가 가지고 있는 내용과 내용이 너무 다른데요? 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삼?” 하고 노드들 간에 교신을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어라 한 놈이 위조를 했네? 이 사기꾼... 님들아 이번 503,971번째 기록 취소요, 니가 상으로 받은 비트코인도 무효!” 라고 하고 그 다음 암호를 찾은 사람에게 다시 503,971번째 블록을 이어붙일 권한과 비트코인을 보상으로 주게 됩니다. 그래서 힘들게 힘들게 답을 찾은 사람 입장에서는 위조된 내용을 넣고 전기세를 날리는 것보다 순순히 비트코인을 보상으로 받는 쪽이 극도로 유리하도록 인센티브가 주어져 있습니다. 요컨대 다수결로 사기 여부를 판단하고, 기술적으로 위조를 할 유인이 도무지 없게 만들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조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채굴 능력 중 50%를 초과(쉬운 이해를 위해 흔히 "51%"라고 표현)하는 만큼이 모여서 담합을 한 후, 위조된 내용을 과반수로 밀어붙여서 대체해 나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비트코인 네트워크가 소모하는 전력량이 왠만한 유럽 국가 하나가 통째로 쓰는 전기량과 같을 정도여서, 비트코인을 파괴하기 위해 그만한 한 국가가 쓰는 전기량을 통째로 소모할 사람이나 집단이 더 이상은 없고, 그런 힘이 있으면서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집단이 있다면 그냥 비트코인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편이 기대수익이 더 큰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설령 과거 기록을 위조해서 자신에게 엄청난 양의 비트코인을 모든 소유자들이 전송했다고 기록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 순간 해킹을 당한 비트코인의 신뢰도가 급락하면서, 해킹으로 소유하게 된 비트코인 가치는 정상적인 상황에서 보상으로 받은 코인 만큼의 가치도 없어질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중앙에서 통제하고 지시하는 권력이 없이도, 위변조가 불가능하고, 이미 사용한 코인은 또 사용("double spending")할 수 없는 화폐와 장부를 전 세계에 분산된 노드들이 유지해 나가게 됩니다. 이렇게 화폐로서의 비트코인은 “신뢰도”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비트코인은 극단적으로 투명성이 높기도 한데, 어떤 지갑(“주소”라고 함)에서 어떤 지갑으로 얼마를 보냈는지는 영원히 거래 기록에 남고 조작이나 변경, 삭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역사적으로 발생한 모든 비트코인의 흐름을 추적하고, 어떤 지갑에 얼마가 들어있는지, 어떤 지갑에서 어떤 지갑들로 얼마가 갔는지를 누구나 쉽게 보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다만 현실에서는 그 지갑이 누구의 것인지를 모를 뿐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 주소를 보고 현실에서 누구 것인지 알고 추적을 하고, 과세를 하기 위해 정부가 실명화를 추진하는 것입니다.

2. “인지도” 문제의 해결



비트코인의 기반이 되는 블록체인 기술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으며, 비용을 얼마 들이지 않고 똑같은 원리의 코인을 누구나 만들 수 있습니다. 정부 관계자가 며칠 전 "비트코인은 이미 기술이 공개되어 있어 6천만원이면 만들 수 있는, 가치가 지나치게 부풀려진 물건"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는데요, 실제로는 그만큼도 안 듭니다. 저희가 XDK를 만든데는 6만원...이라고 하면 개발자의 지적재산과 노동력을 너무 폄하하는 것 같고, 뭐, 6백만원은 확실히 안 들었습니다.

비트코인이 나온 이후 적어도 수십 가지의 실체가 있는 "알트코인(대안 코인, alternative coins, alt-coins)"이 파생되거나 새로 개발되어 나왔습니다. 예를 들어 “라이트코인”은 비트코인이 “컨펌”을 받는데 너무 시간이 오래걸리는 문제를 해결해서 빨리 송금을 할 수 있게 했고, “모네로”나 "대시", “지캐쉬” 같은 류는 비트코인에 익명성이 없다는 점(어떤 주소에서 어떤 주소로 얼마가 갔는지가 다 보이니까)을 수정해서 “누가 누구에게 얼마를 보냈는지” 비트코인처럼 손바닥 들여보듯 환히 알 수는 없지만, “누가 얼마를 받은 게 맞나요” 라는 질문이나 “누가 얼마를 쓴 게 맞나요” 라는 질문은 확인해 줄 수 있어서 익명성 하에서도 여전히 “신뢰도” 요소를 확보하고 있는 코인입니다. (예를 들어 "지캐쉬"의 경우 이를 위해 “영지식증명(zero knowledge proof)” 이라는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영지식증명의 약자 ZKP의 Z에서 Z-Cash라는 이름이 온 것입니다.)

비트코인이 “어떤 주소에서 어떤 주소로 얼마가 송금되었다”라는 것만 기록한다면, “이더리움”은 “이러이러한 조건이 충족되면, 어떤 주소에서 어떤 주소로 송금하는 프로그램을 실행해라”라는 식으로 아예 블록체인 상에서 프로그램을 짤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서의 프로그램(흔히 계약, contract라고 합니다)을 자바로 짤 수 있게 만든 것이 "리스크"이고, 웹어셈블리로 만들 수 있으면 "이오스", C#으로 짤 수 있게 해 놓은 것은 "스트라티스"입니다.

이렇게 기존 기술이 가지고 있던 문제점을 해결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추가해서 만든 것들이 흔히들 잡코인이라고 하는 알트코인이고 유명한 것이 “이더리움”, “리플”, “카르다노”, “아이오타”, “네오(앤트쉐어)” 등등입니다. 이 자리에서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지만 다들 나름의 사연과 기능, 가치가 있습니다.



아무튼 비트코인과 여러 잡코인들은 특히 요즘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소란을 피우면서 자꾸 방송을 타면서 그 전까지는 일면식이 없던 사람들도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거래소가 법정화폐와 비트코인 간의 교환을 매개해 주니, “어라, 비트코인을 누군가에게서 받으면(혹은 미리 사두면) 그걸 언제든 거래소에서 실제 돈으로 바꿔서 인출해 쓸 수 있네?” 라고 믿게 됩니다. 이렇게 “그런 게 있다더라”라는 인식을, 악명을 떨치든 투기심리에 의해서든 더더욱 확보하게 되면서 비트코인은 마침내 확고한 “인지도”를 갖게 되었습니다. 비트코인이 자꾸 보도되고, 분석되고, 문제화되고, 관심을 갖는 사람이 늘어가면서 다른 잡코인들도 덩달아 인지도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현 시점에서 어느 누구도 “내가 너에게 1비트코인을 줄게” 라고 하면 “그게 뭔데요? 먹는건가요? 현실에는 있지도 않고 컴퓨터 상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실체 없는 물건이니 나는 받지 않겠어요.”라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심지어 비트코인 버블 붕괴에 내기를 걸었다는 최흥식 금감원장조차도 만약 10,000 비트코인을 주겠다고 하면, "일신상의 사유"로 금감원장을 그만 두시고 ("버블이 붕괴하기 전에") 거래소에서 2천억원으로 바꿔가실 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내가 너에게 1비트코인을 줄게, 나한테 통장으로 1천만원을 넣어줘”라고 하면 그것조차도 대부분 받아들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1비트코인을 환전하면 쉽게 2천만원으로 현금화가 가능하므로, 즉시 1천만원의 차익을 챙길 수 있으니까요.

“내가 너에게 10,000 ADA(“카르다노”라는 잡코인의 단위)를 줄게 나한테 5백만원을 줄래?” 라고 하면 아직 대부분은 “뭔 개소리여 헛소리 말고 일이나 해”라고 하겠지만 사정을 아는 사람은 그 제안을 덥썩 받아들여서 즉시 몇백만원의 차익을 실현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점점 비트코인에 대해 아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그 자체로 인지도를 확보하고, 범용성이 더 늘어나면서 화폐의 가치는 높아집니다. 단지 그 자리에서 즉시 송금이 가능해야만 화폐의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위에서 말한 "내가 너에게 1비트코인을 줄게, 나한테 통장으로 1천만원을 넣어줘"가 받아들여지는 것만으로도 가치의 저장, 교환 수단으로서 화폐의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비트코인 가격은 과대평가일 수 있지만, 그 가격/가치의 상당부분은 이렇게 쌓아온 신뢰도와 인지도에 의한 것입니다.

중간 결론은 비트코인은 “신뢰”할 수 있고 “인지도”가 있기 때문에 화폐로서의 속성을 갖추었고, 그 가치가 얼마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가치가 없는 물건은 아니며, 현 시점의 가치가 너무 고평가되어 있어 곧 폭락을 할 수도 있지만 이 모든 것이 어느날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져 버릴 신기루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비트코인과 잡코인은 얼마의 가치를 갖는 것이 적당한가?



코인을 만들어내는 건 앞서 설명하였듯, 할 줄 아는 사람으로서는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코인을 새로 만들어내서 비트코인과 같은 신뢰도와 인지도를 갖추려면 우선 비트코인 네트워크가 현재까지 투하해온, 이제는 산정하기조차 힘든 양의 전기, 즉 에너지를 소모하며 우주의 엔트로피를 증가시켜야만 합니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인지도를 확보해 전 세계에 수 만 개의 분산 장부를 자발적으로 배치시켜야 합니다.

"6천만원이면 비트코인 같은 것을 새로 만들어낼 수 있다"라는 말은, "페이스북과 같은 기능을 하는 앱은 6천만원이면 만들어낼 수 있는데 어떻게 페이스북이 550조원 가치를 갖는 회사라고 할 수 있냐"라는 말 만큼이나 무식한 것입니다.

비트코인 네트워크가 다른 코인들보다 시기적으로 더 빠른 시점에 "제일 먼저", “어마어마한 양의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면서” 진입장벽을 치고 선수를 쳐서 신뢰도와 인지도를 확보한 만큼의 가치가 비트코인의 “브랜드로서의 가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종의 first mover advantage입니다. 사람들은 구글이나 애플의 브랜드 가치를 100조 단위로 셉니다. 이런 브랜드들은 사람들이 널리 인지한다는 것만으로도 그만큼의 가치를 갖는다는 뜻입니다. 비트코인도 이러한 브랜드 가치가 있습니다. 더불어 그런 브랜드를 기반으로 인터넷만 연결된 곳이라면 아주 빠른 시간 내에 신뢰할 수 있는 가치전달(송금)을 매개해 줄 수 있다는 “기술적인 가치”가 있으므로 적어도 그 둘의 합이 비트코인의 적정 가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잡코인의 경우 브랜드로서의 가치는 낮지만, 비트코인에는 없는 여러 기능이 있으므로 기술적인 가치는 좀 더 높을 수도 있겠지요.

앞서 비트코인의 기술적인 가치는 권위있는 정부나, 거래를 중개하는 중개인의 존재 없이도 “신뢰”를 확보할 수 있게 한다는 데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사회에서 “신뢰”의 비용은 얼마일까요? 그것은 금리를 보면 됩니다. 정부도 파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 위험을 산정해 국채 금리에 녹이고, 회사가 파산할 가능성을 계산해서 회사채의 가치와 금리를 산정합니다. 개인에 대해서도 “저 놈이 돈을 꿔가서 갚지 않을 가능성이 얼마일까, 돈을 떼먹으려 할 때 쫓아가서 때려잡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얼마일까”를 신용도로 측정해 가산금리를 정합니다. 즉 금리라는 것은 정부의 통화공급/회수 정책에 의해서도 기준선이 정해지지만 기본적으로는 “신뢰”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비용이 얼마인지에 따라 시장이 그 값을 최종적으로 정확히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 블록체인을 기반으로한 화폐나 프로그램들은 그러한 신뢰 비용을 없애거나 대폭 줄일 수 있게 해줍니다. 비트코인은 송금을 받았을 때 위조되었거나 이중지출 되었을 것이라는 의심을 하지 않아도 되고, 이더리움 계약을 통해 체결된 계약은 부동산 중개인이 중간에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주고 배상보험 증서 사본을 주지 않아도 거래 쌍방이 서로를 믿고 거래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러면 중개인에게 주는 수수료가 필요 없어집니다.

세계 금융자산의 가치가 지금 30경 정도 됩니다. 다시 말해 300,000조입니다. 현재 비트코인을 비롯해 잡코인 가치의 총계는 1,000조를 향해 달려가는 중입니다. 대략 세계 금융자산의 0.3% 정도가 된다는 것인데, 이것이 적정값인지는 비트코인과 잡코인이 얼마나 널리 인지도를 갖고 있는지/갖게 될 것인지, 향후 유무형의 자산을 비롯한 소유의 의미가 있는 가치의 소유권 회전율(매년 얼마나 많은 비율의 자산/가치의 소유자가 바뀌는지) 등을 모두 헤아려 봐야 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가상”화폐는 “가공”의 것이니 그 가치를 아예 무시하고 평가절하하거나, 비트코인이나 블록체인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사람들조차도 기술적인 면에만 집중해서 그 기술이 갖는 가치만 산정하려 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이런 코인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이러한 "인지도(브랜드)" 가치입니다.

비트코인이 법정화폐보다 좋은 점은?



예전에는 펜팔이라는 게 있었는데, 손편지를 해외에 있는 친구와 며칠을 기다려 주고 받으면서 교신을 했던 것입니다. 이제는 그냥 메신저로 대화를 하면 되죠. 얼마 전까지도 해외의 친척과 통화를 하려면 무지막지한 해외통화료를 내야만 했고,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실질적으로 무료로 보이스톡이나 스카이프로 실시간으로 목소리를 듣거나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법정화폐와 비트코인의 관계는 기술적인 면에서는 해외우편과 메신저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마치 카톡으로 메시지를 날리듯이 어디에 있는 누구와도 실시간으로 금전 거래를 간단히 할 수 있게 되면서도 그 거래가 위조되지 않았으며 사실이라는 점을 “신뢰”할 수도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비트코인은 송금을 확인(confirm)받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이러한 가치의 전달은 “리플”, "스텔라루멘"이나 "대시", “아이오타” 같이 몇 초 내지는 몇 밀리초 안에 전송되면서도 신뢰할 수 있는 잡코인으로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입니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클라우드 드라이브라는 것은 생소한 개념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실질적으로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모두가 클라우드 드라이브를 사용하는 셈이 되었습니다. 비트코인은 금처럼 금고에 보관하고 보안을 유지하지 않아도 마치 클라우드 드라이브에 저장된 파일에 비밀번호를 가지고 접근할 수 있는 것처럼 한 줄 암호만 보관을 하면 세계 어디서든 꺼내쓰고 전송할 수 있습니다. 금처럼 칼로 나누지 않아도 거스름돈을 주고받지 않아도 0.00000001 단위로 쪼개 쓸 수 있으며 그렇게 사용했다는 내역을 전세계가 사본으로 보관해 검증해줍니다.

왜 정부는 비트코인에 대해 극도로 부정적인가?



가정에서도 경제력/경제권이 있는 사람의 목소리와 존재감이 큰 것처럼, 정부가 존재감과 힘을 갖는 것도 화폐를 발행하고, 세금을 거둬들이며, 그것을 처분할 권한을 갖는다는데서 옵니다. 개인과 회사들이 특정 국가의 법정화폐를 받아들이고, 이용하고, 그것으로 가치 이전을 하며 그 과정에서 세금을 내야 정부의 힘과 권한이 강해집니다.

그런데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은 그러한 권한을 정부와 국가로부터 불특정 다수에게로 이전시킵니다. 정부로서는 지난 10년 이상의 시간동안 기껏 신용카드 거래를 확산시키고 은행계좌를 실명화해서 현금의 흐름을 손바닥 들여보듯 하고 과세를 수월히 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들어 놨는데, 이제와서 정부의 통제 밖에 있는 시장이 커지고 그 시장에서 가치교환이 발생하니 더 이상 그 부분에 대해서는 세원을 확보할 수 없다는 우려가 대두된 것입니다.



개인도, 기업도 밥줄에 손을 대면 격렬히 저항하고 흥분합니다. 각국 정부도 이제는 비트코인에 대해 흥분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트코인의 힘이 커지면 가치 이전 과정에서 과세를 못하니 세원이 줄어들고, 통화 공급과 금리 조정을 통한 시장 통제력도 떨어지게 됩니다. 종국에는 정부의 밥줄을 끊을 수 있습니다. 법정통화 대비 비트코인과 잡코인의 가치가 너무 커지면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국가 경제를 정부가 통제하고 세수를 확보하기 곤란한 상황이 되어버리는데, "그런 것도 있었냐"라고 하는 사이에 비트코인의 가치가 너무 커져버린 것입니다. 미리 준비해두거나 공부해둔 것은 없고, 이제와 새삼 법정통화의 가치를 높일 방법도 없으니, 경착륙을 위해 비트코인의 가치를 침식하는 전략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려면 화폐의 “신뢰”와 “인지도”를 깎아내려야 할 것입니다. 기술적으로는 이미 너무 자명하고 투명한 장점이 있으니, 정부로서는 사회공학적인 전략을 택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가령 "비트코인은 마약중개상, 범죄자, 북한, 테러리스트나 사용하는 것이다"라고 하며 비도덕적인 올가미를 씌울 수 있습니다. 마치 “인터넷을 많이 하면 히키코모리가 되고, 건강을 해치며, 야한 동영상을 보고 나쁜 말이나 배우게 된다”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과 같죠. 입법을 통해 통제할 수 있는 법역 내에서는 비트코인을 거래하거나 그것을 통해 가치를 교환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해 범용성을 떨어트림으로써 화폐로서의 전망과 가치를 훼손시킬 수도 있습니다. 즉, 비트코인을 “불량하며 쓸데없는 것”으로 널리 교육시킴으로써 법정통화 대비 비트코인의 가치가 임계점을 넘지 않도록 찍어눌러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비트코인을 통한 개인간(P2P), 개인-회사간(B2C), 회사간(B2B) 거래라는 것은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비트코인은 마치 금고속의 금처럼 보관되어 있다가, 소유자는 실생활에서 활용하기 위해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교환을 해야만 그 가치를 소모할 수 있는 형편입니다. 그렇다면 비트코인과 법정화폐 간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거래소의 현금 흐름을 차단함으로써 비트코인이 범용성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이 정부로서는 합리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 거래소들을 급습하여 세무조사를 하고, 도박죄와 같은 불량사범의 덫을 씌우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비용효율적이고 신속한 해결책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면 어떻게 투자를 하고, 이익을 보는 것이 현명할까?



지금 이 시점에서는 거래소에서 비트코인과 잡코인을 거래하는 사람들의 99.9%가 그것들의 가치와 본질을 모른 채 투자(투기)하고 거래하며, 정부 역시 실체를 모른 채 규제, 처벌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트코인, 그리고 그것이 기반하고 있는 블록체인이라는 것은 마치 1990년대의 인터넷, 1980년대 개인컴퓨터의 등장처럼, 2010년대의 거대한 흐름이며 결국은 세계와 사회 전반에 널리 응용되고, 채택될 기술이어서 이제는 돌이킬 수도 거부할 수도 없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코인을 미리 사두고 그걸 보유해서 얻을 수 있는 시세 차익보다는 (더 이상 "미리"라는 말을 쓸 수 없을만큼 높은 미래가치와 기대를 코인들의 가격이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 기술을 잘 채택하고 응용해서 성장하는 회사를 빨리 알아보고 돈을 묻는 쪽이 상대적으로 낮은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더 많은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전략일 것입니다.

인터넷의 모체가 된 기술은 1969년에 등장했고, WWW(월드와이드 웹, 실질적인 인터넷 대중화의 시초)는 1990년에 등장하였지만, 지금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인터넷 기업인 FANG (Facebook, Amazon, Netflix, Google) 은 각각 2004년, 1994년, 1997년, 1998년에야 창업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업들의 주식의 가치가 본격적으로 팽창하기 시작한 것은 창업으로부터 10년이 더 지난 후였습니다.

Posted by 공타쿠